나이트 워치 by 유월

영화가 언제 개봉했더라? 2004년? 2005년? 꼭 본 것처럼 말하네요. 못 봤습니다. 제목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집어든 이유는 한마디로 머리 한구석에 남아있던 영화제목 때문입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계속 되어왔던 선과 악의 싸움은 소강상태를 맞습니다. 양측 모두 더 이상의 희생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협정을 맺고 휴전에 들어 간 거죠. 선과 악은 각각 야간 경비대(나이트 워치)와 주간 경비대(데이 워치)를 조직하고, 협정을 어긴 대상을 처벌하는 한편 끊임없이 상대방을 쓰러뜨릴 기회를 엿봅니다.

주인공 안톤 세르게예비치 고로제츠키(아~ 이름 참 길다.)는 모스크바 야간 경비대 소속 대원입니다. 원래는 내근직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외근직으로 차출됩니다. 보직 변경에 따른 절차를 밟던 중, 임무의 일환으로 규칙을 어긴 흡혈귀 커플을 단속합니다. 도중에 마주친 저주 걸린 여인 때문에 문제가 생길 뻔 했지만, 남자 흡혈귀는 소멸하고 여자 흡혈귀는 도주, 흡혈 대상이었던 소년은 목숨을 건집니다. 모든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선과 악의 세력, 인간이 아닌 자, 마녀, 마법사, 변신술사, 세상의 이면,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이 튀어나오네요. 이체롭...지는 않지요.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은 이제 신기할 구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입니다! 모스크바에요! 우리나라와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나라지만, 뭔지 모를 환상이 있다고 할까요. 같은 설정이라도 러시아 버프가 씌워지면 뭔가 더 그럴듯해 보인단 말입니다. 쿠오오~ 갑자기 보드카 한잔이 땡기네요.


생각난 김에,
나는 가판대로 달려가 상인에게 동전 두 개를 내밀고는 치아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6루블 짜리로 고리 달린 거 한 병이요.” 여드름 난 청년은 머뭇거리며(그도 일자리에서 술로 몸을 덥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4분의 1리터 병을 내일었다. 그러고는 정직하게 충고했다. “뭐 그리 좋은 보드카는 아닙니다요. 그렇다고 해서 독극물도 아닙죠. 그래도 ‘길거리표’ 이긴 하니.” “건강이 더 중요하죠”  
이런 장면 너무 좋지 말입니다.


뭐, 설정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설정만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만약 ‘나이트워치’가 그랬다면 분명 큰 재미는 없었을 겁니다. 읽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이야기 자체가 잘 짜여 있어요. 상하권 합쳐서 총 4개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커다란 줄기를 따라서 진행되어 왔다는 걸 마지막에 와서 알 수 있습니다. 연관성을 생각 할 수 없었던 요소들이 결국에는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꽤 볼 만 합니다.

또 하나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의 갈등입니다. 이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고민을 해대는데, 이게 제대로 와 닿습니다.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갈등하죠. 하나는 세력화 되어버린 선에 대한 갈등, 다른 하나는 이미 결정되어 버린 미래에 대한 갈등입니다.

우선 첫 번째 갈등. 나이트 워치와 데이 워치의 대치를 보고 있으면 선악의 투쟁이라기보다 세력 간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느낌이 큽니다. 주인공이 갈등을 느끼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선(善)을 이념으로 삼지만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는 현시창(...) 게다가 자신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간세상을 위해 싸운다는 건 힘 빠지는 일이죠. 야간 경비대의 다른 구성원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만족하면서 살아가는데, 유독 주인공은 체념과 갈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하긴, 그러니까 주인공이지.

두 번째는 한마디로 ‘어떻게 될지 알면서 불구덩이로 뛰어들어야 하는 가’ 에 대한 갈등입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미래를 이미 알고 있고, 꽤나 비참한 미래라는 점입니다. 환장할 노릇이죠.

대략 정리하자면 설정 괜찮고, 이야기 잘 짜여있고, 주인공 하는 짓도 마음에 들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이상한 건 상권 앞머리 부분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거. 원문이 그런 건지 번역이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시리즈에 손을 댈 것 같습니다. 데이 워치, 더스크 워치까지 모두 나와 있으니. 근데 더스크 워치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