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에서는 바벨탑을 불러오더니 2, 3권에서는 세계 멸망이냐. 이 작가는 스케일 키우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수습을 할지 조마조마 합니다.
‘연옥의 허신’에서는 메이젤의 과거 한 토막과 함께 거기서 시작된 악연이 소개 됩니다. 각인 마도사에서 도망자로 전락해버린 아사리 케이츠. 별 볼일 없는 실력을 가진 주제에 세상을 향한 증오로 똘똘 뭉쳐있는 남자죠. 동시에 메이젤의 첫 대전 상대였던 인물입니다. 미국으로 도피했던 아사리 케이츠가 일본으로 돌아오고, 상사대계의 초고위 마법사 글렌 아자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케이츠는 메이젤을 상대로, 글렌은 협회와 공관과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번 권은 아무래도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내용입니다. 글렌이 전쟁을 선언하고 마도사들은 픽픽 죽어나가는데 메이젤은 사지로 뛰어들겠다고 빡빡 악을 써대는 모습이라니.
메이젤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른 세계의 주민, 각인 마도사라는 신분, 유별난 자존심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더라도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가 죽고 죽이는 행위를 통해서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무엇 때문에 다양한 선택지를 외면하고 단 하나의 선택에 집착하는 건지.
이건 진도 마찬가지. 당연히 해야 할 일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메이젤에게 끌려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메이젤에 대한 애정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이번 권에서 진의 생각과 행동은 보고 있기가 좀 껄끄럽습니다. 당신은 어른이잖아!
현재 단계에서는 두 사람 다 아직은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메이젤과 진의 과거가 좀더 밝혀진다면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로써는 근거가 부족하니 이렇게 추측할 수 밖에요. 메이젤의 선택이 멋모르는 아이의 고집처럼 느껴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진의 모습이 자신감 부족으로 보이는 탓도 있습니다.
일단 두 사람은 그렇다고 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확실히 캐릭터의 개성이랄까... 디테일이 늘어났습니다. 전권에서도 그랬지만 전형적이라는 느낌이 여전하기는한데, 작가가 등장인물에 살을 붙여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예를 들어서 미즈키(마수사)의 경우를 보면 쿨한 캐릭터에 의외로 바보 같은 일면을 붙여준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들 - 키즈나의 도시락을 처묵처묵하는 상황 같은 - 이 매끄럽게 설정된 탓에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절반은 농담입니다만 ‘이것이 상업작가 퀄리티!’ 라고 할까요.
3권의 무인도 물놀이 장면(...)을 봐도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서비스 씬을 들이미는 데도 생각보다 위화감이 덜하죠. 이야기 흐름 속에 교묘하게(?)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의미 없는 서비스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크게 거부감이 없더군요. 위에서는 농담처럼 말했습니다만, 적어도 영리한 작가라는 것은 인정하고 넘어 가야겠습니다. 그놈의 문장 스타일만 어떻게 좀 해줬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여기까지 써 놓고 봤더니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야기 하지 않았군요. ㅡㅡ;
1권 정리에서도 썼지만 기본 속성(이능력 배틀물) 때문인지 줄거리를 정리하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쓰기가 귀찮아서가 아닙니다!) 그저 드문드문 인상에 남은 것들을 늘어놓을 수 밖에요.
조금 의외이긴 한데, 먼치킨스러운 글렌과 찌질스런 케이츠의 이야기는 별로 인상에 남질 않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는 인물 별로 따로 떼어놓고 봐도, 한데 엮어놓고 봐도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군요. 인물이나 관계에 별로 매력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메이젤과 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갈지에 더 관심이 쏠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불만이 생기는데, 좀 흐지부지하게 둘 사이가 정리되었다고 할까... 명확한 설명 없이 그저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 이기 때문에 봉합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뭐, 여전히 남아있는 불안의 씨앗 정도로 정리할 수도 있겠죠.
참, 글렌의 마지막 - 혹은 어떻게 세계의 위기가 해결되는지 - 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작가가 선방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아슬아슬 하긴 했어도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괜찮은 결말이라고 봅니다.
그럼 오늘 도착한 원환소녀 4권의 래핑을 뜯고 잘근잘근 씹어봐야겠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조금 기대 중입니다.
덧.
3권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왜 3대 로리물에 들어가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쿠오옷~